연혁

한국연구원이 지나온길

 

연혁

한국연구원이 지나온 길


설립 배경


한국전쟁 직후의 국내 대학, 그 중에서도 인문사회학 분야는 연구 환경이 척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국내의 어느 대학 도서관도 한국학 관련 도서와 외국 서적이나 저널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를 걱정한 서울의 4개 대학 총장(서울대 최규남, 연세대 백낙준, 고려대 유진오,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은 아무리 나라 살림이 힘들어도 인문사회학 관련 도서를 구입하고, 한국학 관련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인문학 연구원 하나는 꼭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규남 총장의 주도하에 위의 4개 대학 총장은 1954년에 이런 뜻을 미국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에 전하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1956년 6월, 미국 아시아재단의 원조를 받아 한국 최초의 인문사회학 연구원인 '한국연구원'이 문을 열게 되었고, 백낙준 총장이 최초의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전성기


1956년 아시아재단과 한미재단의 풍부한 재정적 지원을 받은 한국연구원은 당시 대학이 구입하지 못했던 한국학과 관련한 자료와 해외에서 발간한 한국학 서적, 그리고 인문사회학 저널을 다량 구입하고 정기 구독해서 연구자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의 경우 본원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본원의 자료 제공으로 매일신보를 디지털화해서 연구자들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본원만이 대동여지도 채색본 중 유일하게 독도가 표기되어 있는 지도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본원은 1958년부터는 한국연구총서 발간을 통해 한국학을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1960년대에서 80년 초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대표했던 많은 1세대 인문학자들이 본 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발표했습니다.


연구비 지원의 결과물은 '한국연구총서'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100권 넘게 출간되었습니다. 또한 초기엔 하버드 대학의 라이샤워 교수와 페어뱅크 교수 등, 외국의 저명 학자들을 초빙하여 본원에서 학술 회의를 개최하고 한국학 관련 강의를 하는 등 활발한 학술 활동을 했습니다.


침체기


1960년대 말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아시아재단 등 외부의 자금 지원이 1970대 말에는 일체 중단되었습니다. 따라서 본원은 보유하고 있던 토지에 상가 건물을 지어, 거기에서 나오는 임대료만으로 연구원을 운영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전과 같이 활발한 학술사업은 펼칠 수 없게 되었고, 그 이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점차 한국연구원은 인문사회학자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출발


한국 연구원이 가장 침체했던 2004년 말 원장으로 취임한 김상원 원장은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함께 힘을 합해, 평동 사옥을 리모델링 하는 등 하드웨어를 정비하고, 열악했던 재정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서울시 도시환경 정비사업으로 본원은 평동 사옥을 매각해야 했습니다. 2016년에 본원은 지난 60여년간 지켜온 평동 사옥을 매각하고, 마포의 임시 사옥으로 이전했습니다. 2018년에 본원은 새로 전보다 더 많은 임대수익을 창출하는 수익형 건물을 구입했고 아현동에 연구원 신사옥을 신축할 예정입니다.

이제 본원은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사회학 연구원이란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 출발하려 합니다. 앞으로 본원은 새로 신축할 아현동 신사옥을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학 온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구를 하는 인문사회학자를 지원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하는 인문사회학 연구원으로 자리 매김하려 합니다.